봄./영화.

<더 라이트하우스(The Lighthouse)>(2019)

작자 미상. 2020. 10. 19. 12:13

태생적으로 구원받을 수 없는 인간은 원죄를 지고 살아야 한다.
영화의 엔딩에서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프로메테우스 신화다. 새에게서 간을 쪼일 수밖에 없는 프로메테우스의 삶. 그게 인간이다. 진리를 원해서 영원히 고통받을 수밖에 없는 게 인간이다. 살아 있는 상태에서 새가 속살을 파고들어도 반항할 수 없다.
인간의 원죄를 가지고 있다. 이프라임이 이 외딴 섬에 오기 전부터 죄를 지었던 것처럼. 하지만 인간은 자신의 원죄를 돌보지 않고 신의 위치에 오르고자 한다. 빛이라는 진리를 바란다. 하지만 신은 인간에게 진리를 주지 않는다. 토마스라는 이 섬의 신이자 왕은 진리가 이프라임이라는 인간에게는 버겁다고 말하는 듯하다. 그리고 이프라임은 결국 신에게 저항하고 진리를 찾아가지만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카루스가 태양이라는 진리를 향해서 날았지만 녹아버린 밀랍으로 추락한 것처럼 이프라임은 추락한다.
성이라는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은 꿈에 발현된다. 사이렌의 신화가 그러하듯이. 이영화 속 이프라임의 꿈도 마찬가지다. 사이렌의 꿈에 빠져서 결국 자신을 물속으로 집어넣을 것이라는 예견과도 같은거다.
흑과 백으로 나눠어진 세상은 선과 악이라는 대립적인 세상과 일치한다. 한때는 신이었지만 기독교가 들어오면 악이 되어버린 신들은 선과 악의 모호함을 지닌다. 절대적이지만 꼭 선하지만 않은 신들. 인간과 같이 술과 춤과 여자를 즐겼던 그리스의 신과 같이 토마스는 그런 신이다.
인간은 신을 이기지 못한다. 그래서 신에게 도망치려고 한다. 하지만 신은 인간이 도망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신의 땅에서 계속 살라고 명령한다. 도망치려는 이프라임을 비상 보트를 부숨으로써 토마스라는 신은 이프라임이라는 인간의 도피를 막는다. 인간이 신에게 도피할 수 없다면 저항만이 남게 된다.
둘의 관계는 신과 인간의 관계다. 한 때 가까워져서 술을 마시고 함께 춤을 출때도 있지만 이프라임은 토마스에게 저항한다. 인간은 신의 권위를 따르지만 그 권위에 반항한다. 인간은 신의 권위에 도전하지만 추락한 할 뿐이다.
마지막으로 온전히 영화를 단 둘이서 채워낸 두 배우에게 찬사를.
[2020. 9. 16 토요일]